중국의 반도체 자립 가능성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소비국입니다. 스마트폰, 가전제품, 서버,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인프라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중국은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는 단순한 상업적 수입 품목이 아니라, 국가 산업 경쟁력과 기술 주권, 심지어는 국방 안보까지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 되면서 중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의 자립화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2025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반도체 기술 자립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글로벌 산업에 미칠 파급 효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 반도체 굴기와 빅펀드 전략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전략은 단순한 민간 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주도형 산업 육성 모델입니다. 2014년 중국 국무원은 '국가 집적회로 산업 발전 추진 대강'을 통해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고, 2019년 미중 무역전쟁 이후로는 그 강도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중국에게 '기술 자립의 절박함'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이 급속도로 확대되었습니다.
중국은 ‘빅펀드(대규모 반도체 투자 기금)’ 1기(2014~2019), 2기(2019~2025)를 통해 총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성해 반도체 설계, 제조, 장비, 소재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기금을 통해 중국 내 파운드리 대표 기업인 SMIC, 메모리 제조사 YMTC, 설계 전문 기업 하이실리콘(Hisilicon) 등 수많은 반도체 기업이 성장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고, 기술 내재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또한 각 지방 정부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제 감면, 부지 제공, 인프라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기술 격차: 선단공정, EDA, 장비의 벽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 의지는 확고하지만, 현실적으로 극복이 쉽지 않은 기술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선단 공정(Fine Process)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현재 5nm, 3nm, 그리고 향후 2nm 이하 공정 경쟁에 진입하고 있으나, 중국은 아직 14nm 수준에서 안정적인 수율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중국의 대표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2022년 7nm 제품의 샘플을 발표했으나, 이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없이 구현된 기술로 생산 효율성, 수율, 상용화 가능성 면에서 제약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ASML의 EUV 장비가 미국의 요청으로 중국 수출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EUV 없이 7nm 이하 공정을 구현하는 것은 극도로 복잡하고 생산성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반도체 칩의 설계에 필수적인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중국은 아직 자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시장의 90% 이상을 미국 기업인 Cadence, Synopsys, Siemens EDA가 점유하고 있으며, 이들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 기업에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첨단 칩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더불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각종 장비 – 식각기, 증착기, 계측기 등 – 역시 일본, 미국, 독일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이들 국가가 수출을 통제할 경우 전체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장비, 설계, 소재, 공정 등 모든 부문에서 고르게 기술 내재화를 이루지 않으면, 완전한 자립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중국의 자립 전략: RISC-V, 내수시장, 장비 국산화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중국은 대체 전략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첫째, 오픈소스 CPU 아키텍처인 RISC-V를 활용해 ARM과 같은 외국 IP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가 활발합니다. 알리바바의 T-Head, Huawei의 QingTeng 프로젝트 등이 RISC-V 기반 CPU를 개발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이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RISC-V는 로열티 없이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처럼 기술 제약을 받는 국가에게 매우 유리한 선택입니다.
둘째, 내수 중심의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화웨이, 샤오미,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칩을 설계하여 국산 파운드리에 위탁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공공기관, 금융권, 통신업계에 국산 칩 사용 비율을 높이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정 수요를 확보하고 자체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전략입니다.
셋째, 국산 장비·소재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노광장비 업체 SMEE는 28nm급 DUV 장비의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으며, CMP 슬러리, 포토레지스트, 실리콘 웨이퍼 등 소재 국산화도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선진국 수준의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술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결론: 완전 자립은 어렵지만, 전략적 자립은 가능
2025년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이 미국, 대만, 한국처럼 선단 공정과 첨단 시스템 반도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저가 칩, 특수용도 반도체, 메모리 일부 영역, 그리고 RISC-V 기반의 시스템 칩 분야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립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국은 전면 자립보다는 ‘부분 자립’, ‘전략적 자립’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기술 제재를 우회하거나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반도체 공급망의 ‘탈미국화’와 ‘지역 블록화’를 더욱 가속시킬 수 있고, 글로벌 기술 패권 구도의 재편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